제국주의와 제1차 세계대전

 

산업화를 통해 자본주의가 된 국가들은 자본주의의 특성인 공급과잉 문제에 필연적으로 봉착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수요를 늘리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만 한다. 시장을 개척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식민지를 만드는 것이다. 식민지를 만들어 원료를 공급받고 가공품을 판매하면 된다.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된 유럽이 필연적으로 거칠역사의 방향이다. 실제로 산업화된 유럽의 국가들은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해 세계로 뻗어나갔다. 영국은 인도로 갔고, 스페인은 남미로 갔고, 프랑스는 아프리카로 갔다. 그곳에 식민지를 만들어, 자구에서 만든 생산 품을 강제로 판매했다. 대표적인 예가 인도다. 영국인 인도를 식민지화한 후에 자국의 면적물을 인도에 판매하고 그 대가로 아편을 받았다. 그리고 받은 아편을 중국에 판매한 대가로 홍차와 막대한 부를 얻었다. 인도는 영국의 면적물 산업에 종속되면서 자원과 부를 영국에 빼았겼다. 면직물로 인해 국가 전체가 영국에 종속된 것이다.

 

 

그래서 간디는 영국산 면직물의 수입을 막기 위해 옷을 스스로 제작해서 입자는 운동을 펼쳤다. 우리가 간디 하면 물레를 감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이때문이다. 물레는 영국산 면직물에 대한 거부이며, 궁극적으로 영국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상징했다. 산업화된 유럽의 국가들은 식민지를 확보함으로써 공급량이 수요량보다 많다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산업화된 국가들이 식민지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면 시대를 제국주의 시대라고 한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국가는 독일이다. 독일은 빠르게 산업화하는 유럽에 속해 있으면서도 산업화가 늦어지면서, 뒤늦게 식민지 경쟁에 뛰어 들었다. 독일이 산업화가 늦어진 것은 중세 봉건제가 오래 지속되면서 계속된 내전으로 산업화를 추진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후 통일이 된 독일은 산업화에 박차를 가했다. 산업화에 따라 자본주의가 정착했고 자본주의의 특성인 공급과잉의 문제가 발생했다. 다른 산업화된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독일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장을 확보해야만 했다. 즉, 식민지 국가를 선설해야만 했다. 그래서 독일도 필연적으로 식민지를 찾아 떠났다. 그런데 더이상 차지할 만한 식민지가 없었다. 이미 앞서 산업화한 열갈들이 식민지를 모두 차지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위기에 봉착했으며 산업화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장이 필수지만, 새롭게 구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하지만 곳 독일에가 기회가 찾아오는데 동맹국인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황태자가 보스니아의 시라예보 지역에 갔다가, 보스니아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에서 독립하기를 원하는 세르비아계 청년에게 피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독일은 동맹국인 오스트리아의 황태자가 러시아 지역에서 민족 문제로 암살당한 것이다. 독일한테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사건을 빌미로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독일은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하게 된것이 제1차 세계대전의 서막이다.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약 4년 동안 지속되었다. 표면적인 원인은 오스트리아의 황태자가 세르바아계 청년에게 암살당한 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오스트리아와 독일이 러시아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했다. 그리고 러시아의 동맹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에 참전하고 후에 미국도 참전하면서 세계적인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의 궁극적인 원인은 자본주의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공급과잉이라는 자본주의 태생적 한게,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산업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독일이 선택할 수 있는 해결책은 전쟁 이외에는 없었다. (산업화->자본주의->공급과잉->식민지 필요->제국주의)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그리고 이탈리아가 3국 동맹을 형성하고,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가3국 협상을 결성하여 대립하였다. 영국과 프랑스가 러시아에 협력한 이유는 단순했다. 급속히 성장하는 독일이 자신들의 식민지를 위협한다는 거을 알았기 때문이다. 식민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독일을 저지해야만 했다.

 

 

결국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치열한 전투 끝에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전쟁에서 패배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다음 해인 1919년 6월 28일,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에서 승전국들은 전쟁의 책임을 물어 전쟁 범죄국인 독일에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물게 했다. 이 베르사유 조약으로 독일의 경제는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침체되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공급과잉이라는 자본주의 특성으로 인해 발생했던 국가 간의 갈등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귀결되었고, 세계는 안정화 되었다. 전쟁 후B는 국가가 관리해주는 식민지에서 안정적으로 구두를 팔 수 있었다. 게다가 전쟁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전쟁 중에 군에 구두를 납품하면서 창고에 쌓아두었던 구두 재고를 모두 처릴 할수 있엇을 뿐만 아니라 밤을 새워 공장을 가동해도 군의 수요를 따라가기 힘들 정도였다. 전쟁은 막대한 수요를 창출했고 이로 인해 공급과잉이라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일시적으로 해소해주었다.

 

실제로 다수의 민간인은 고통스러울 수 있으나, 전쟁은 일부 부르주아 혹은 일부 국가들에 막대한 부를 창출해준다. 자본주의는 전쟁과 가까울 수밖에 없다. 전쟁은 자본주의 국가들을 유혹한다. 사실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유지해주는 핵심 요소는 두가지이다. 하나는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유행이다. 전쟁과 유행은 자본주의라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라 할 수 있다. 전쟁이 공급과잉 문제를 단번에 해소하듯, 유행은 필요를 뛰어넘는 막대한 소비를 창출해서 공급과잉 문제를 해소한다.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옷과 핸드백들이 매년 옷장 구석에 쌓여가거나 쓰레기통으로 향한다. 전쟁과 유행 없이 자본주의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모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 경제대공황-1  (0) 2016.10.09
<스티브잡스> 애플의 베스트 제품  (0) 2016.10.07
눈 시력 좋아지는 법과 눈에 좋은 음식  (0) 2016.10.06
집중력높이는 백색소음 사이트  (0) 2016.10.05
잠 잘오는 방법  (0) 2016.10.04

+ Recent posts